<이 글은 '쫑알공주 도희체'로 썼습니다. '도희체'가 설치돼 있지 않으면 기본 글꼴로 나올 수 있습니다.>

(2005년 2월 5일, 집)


아파트로 이사하기 전에 살던 우리 집은 볕이 잘 들었지. 아직 추운 2월 초의 오후. 공주가 안방에 눠워 책을 읽고 있다. 어쩌면 공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이 분위기가 참 좋았다.

도희의 손글씨로 만든 글꼴인 '쫑알공주 도희체'의 정식판 v 2.0을 나눠드립니다. 윈도우 컴퓨터와 맥북에서의 사용 편의성을 높였습니다.  

안드로이드용 스마트폰은 기존의 v 1.0을 그대로 쓰셔도 됩니다(아이폰은 설치 자체가 안 됩니다).

http://dohhee.tistory.com, 왼쪽의 도희 사진 밑 '공지'로 들어오시면 받으실 수 있습니다(무료).

http://blog.naver.com/dohheebest, 왼쪽 'category'의 '공지'로 들어오시면 받으실 수 있습니다(무료).

http://m.mt.co.kr/new/view.html?no=2012092610134121483 에 들려주시면, 도희와 '도희체'에 대한 기사를 읽으실 수 있습니다.

도희의 흔적을 남기고, 도희와 아이들을 기억해 주시길 부탁드리기 위해 만들었습니다. 설치해서 쓰시면 더욱 감사하고, 쓰시지 않더라도 도희와 아이들을 잠시 기억하고 기도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고맙습니다.      -dh-

Posted by 도도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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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에서 2박 3일을 보내고 돌아오는 목요일 저녁, 아니 정확하게는 이틀째 되는 날 저녁부터 감기 기운이 있었다. 그럭저럭 견딜만 했기에 자전거를 탔다. 샘게우물 조금 못 미친 마을에서 출발해 충주쪽으로 가다 쌍다리까지, 대략 왕복 40km를 탔다. 햇살은 여전히 좋고, 중간에 적당히 쉬면서 탔다. 숙소로 돌아오니 몸이 좀 나른했지만 괜찮다 싶었는데, 땀난 상태에서 샤워를 한 게 안 좋았다. 감기에 걸렸다.

몸살로 가는 건 어떻게든 막으려고 애를 썼다. 감기몸살을 워낙 '세게' 앓기에. 십중팔구, 열감기로 번져서 온 몸이 오한에 벌벌 떨면서 적어도 사나흘은 끙끙 앓는다. 아내에게도 미안하고, 그렇게 아프긴 싫었다. 특히 지난 금요일 저녁에 장애아들로 이뤄진 합창단을 돕는 1일 호프가 있어서 거기에 갔어야 했다. 엄홍길 대장을 만나야 했다. 네팔에 도희 이름의 학교를 짓는 걸 논의해야 한다. 그런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안방에 아주 작은 화장실이 붙어있다. 도희만 쓰게 했던 화장실이다. 이번엔 나만 쓴다. 아내와 도영이에게 감기를 옮길까 싶어서. 변기를 붙잡고, 계속 "우웩~" 거리고 있다. 

몸살로 번지는 건 막았다. 도희가 먹었던 면역력 강화제를 네 개나 먹었고, 일찍 잠자리에 들고, 고용량 비타민C도 먹고, 그렇게 했더니 그나마 효과가 있다. 그런데 머리가 너무 아프다. 목요일 밤부터 두통의 징후가 있더니 금요일 오전부터 제대로 시작이다. 특히 편두통이다. 평소 편두통은 거의 없었는데, 많이 아프다. 머릿속에서 송곳으로 쿡쿡 찔러대는 느낌. 머리 왼쪽 뒷편에서 통증이 시작하더니, 위 아래로 옮겨다니며 아프다. 누울 때 아픈 곳을 댈 수 없을 정도로 아프다. 그래서 하룻밤은 오른쪽으로만 누워서 잤다.

두통 때문인지, 메스껍고 구역질이 난다. "우웩~" 거리는데, 눈물이 쏟아진다. 내가 아무리 아프다고 한들, 도희가 아픈 것만 할까? 2년 반 가까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약을 먹어야 했다. 머리는 수시로 무겁고, 때로는 두통으로 몹시 아파했다. 메스꺼워서 병원에서는 진토제를 달고 지냈다. 집에서는 바로 이 변기를 부여잡고 구역질을 했다. 때로는 내가, 어떤 때는 아내가, 도희 등을 살살 두드려주며 울었지만, 도희가 얼마나 아픈지는 몰랐다. 그저 미안하고 안쓰러웠다. 도희는 그래도 그 고통을 잘 견뎌냈다. 나라면, 절대로 도희만큼 잘 참지 못했을 거다.

아파도, 이제는 아프다고 말할 수 없다. 도희를 생각하면, 아무리 아파도, 당장 죽을 것 같아도, 아프다고 할 수 없다. 도희도 아팠는데, 그리고 잃었는데, 도저히 아프다고 할 수가 없다. 아파도 도희가 아픈 것만큼 아프겠는가 싶고, 차라리 도희가 아픈 것만큼 아픈게 낫겠다.

도희는, 얼마나 힘들고 무서웠을까? 아빠라고 하면서도, 내 딸이 겪는 육체의 고통과 마음의 두려움을, 난 제대로 몰랐다. 요 며칠, 호된 편두통을 겪으면서야, 도희가 아픈 게 이 정도였을지, 아니면 더 아팠을지, 울면서 생각한다. 

가끔 죽음을 생각한다. 당장 죽어야겠다는 생각은 못하지만, 죽음을 선고받아도 크게 울거나 공포스러울 거 같지는 않다. 담담할 수 있겠다면 거짓말일 수도 있겠지만, 도희와 엄마를 다시 만날 수 있겠구나, 싶은 생각에, 그럭저럭 죽는 과정을 견딜 수 있을 것 같다. 편두통이 이런 내 생각을 더 굳힌다. 아플수록 도희를, 그리고 엄마를 생각한다.      -dh-

Posted by 도도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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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18일 목, 샘게우물>


(이 글은 10월 18일 목요일에 페이스북에 올린 것을 다시 정리한 글입니다. 여주에 다녀온 뒤 사흘간 감기로 꼼짝못하다 오늘에야 올립니다.)

오늘(10월 18일 목)은 여주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어제 새벽부터 비가 와서 오전에 그쳤다. 오후에 자전거를 타기엔 시간이 빠듯할 것 같아 하루 미뤘다. 날씨는 여전히 쾌청하다. 내 삶의 시간과는 반대되는 날씨다. 마음이 그냥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도희가 이런 밝고 맑은 날을 좋아했으니.

샘게우물가에서 잠시 쉬었다. 코스모스들이 눈에 띈다. 일부러 가꾼 것들은 아닌 것 같다. 아내가 코스모스를 좋아한다. 그래서 사진 몇 장을 찍어서 보내줬다. 사진을 찍다보니, 코스모스가 참 예쁘다. 도희만큼은 아니어도, 도희처럼 예쁘다. 눈길을 끄는 코스모스들이 있다. 색이 참 곱다, 했더니, 분홍색이다. 아, 그렇구나, 도희가 분홍색을 제일 좋아하지, 그래서 '분홍공주'라고 불렀지. 그렇구나, 그래서 아빠 눈이 이렇게 끌리는 구나.

처음부터 쌩쌩, 멀리 멀리 가려고 하지 않았다. 카메라를 들고 나오지 않았지만, 담고 싶은 것들이 눈에 밟힌다.

논에, 밭에, 산에, 강가에, 생명을 잃은 것들, 잃어가는 것들이 많다.

어떤 풀들은 되살아나고, 나무들은 잎을 피우겠지만, 어떤 것들은 이 가을에 바짝 말라가며 생명을 마무리한다. 저 코스모스들도, 꽃을 피우는 것들 못지않게, 아마 더 많은 것들은 스러져가고 있을 것이다.

생명이란 무엇일까?

삶도, 죽음도, 모두 자연의 일부라던 노무현 대통령을 가끔 생각한다. 부엉이 바위에서 무엇을 바라보며 떠올렸을까?

도희와 늘 함께 있음을, 반드시 다시 만남을 신앙으로 고백하며 오늘도 버틴다.      -dh-

Posted by 도도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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