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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10.21 2012년 10월 21일 일, 감기, 편두통, 고통, 병 by 도도 아빠 2

여주에서 2박 3일을 보내고 돌아오는 목요일 저녁, 아니 정확하게는 이틀째 되는 날 저녁부터 감기 기운이 있었다. 그럭저럭 견딜만 했기에 자전거를 탔다. 샘게우물 조금 못 미친 마을에서 출발해 충주쪽으로 가다 쌍다리까지, 대략 왕복 40km를 탔다. 햇살은 여전히 좋고, 중간에 적당히 쉬면서 탔다. 숙소로 돌아오니 몸이 좀 나른했지만 괜찮다 싶었는데, 땀난 상태에서 샤워를 한 게 안 좋았다. 감기에 걸렸다.

몸살로 가는 건 어떻게든 막으려고 애를 썼다. 감기몸살을 워낙 '세게' 앓기에. 십중팔구, 열감기로 번져서 온 몸이 오한에 벌벌 떨면서 적어도 사나흘은 끙끙 앓는다. 아내에게도 미안하고, 그렇게 아프긴 싫었다. 특히 지난 금요일 저녁에 장애아들로 이뤄진 합창단을 돕는 1일 호프가 있어서 거기에 갔어야 했다. 엄홍길 대장을 만나야 했다. 네팔에 도희 이름의 학교를 짓는 걸 논의해야 한다. 그런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안방에 아주 작은 화장실이 붙어있다. 도희만 쓰게 했던 화장실이다. 이번엔 나만 쓴다. 아내와 도영이에게 감기를 옮길까 싶어서. 변기를 붙잡고, 계속 "우웩~" 거리고 있다. 

몸살로 번지는 건 막았다. 도희가 먹었던 면역력 강화제를 네 개나 먹었고, 일찍 잠자리에 들고, 고용량 비타민C도 먹고, 그렇게 했더니 그나마 효과가 있다. 그런데 머리가 너무 아프다. 목요일 밤부터 두통의 징후가 있더니 금요일 오전부터 제대로 시작이다. 특히 편두통이다. 평소 편두통은 거의 없었는데, 많이 아프다. 머릿속에서 송곳으로 쿡쿡 찔러대는 느낌. 머리 왼쪽 뒷편에서 통증이 시작하더니, 위 아래로 옮겨다니며 아프다. 누울 때 아픈 곳을 댈 수 없을 정도로 아프다. 그래서 하룻밤은 오른쪽으로만 누워서 잤다.

두통 때문인지, 메스껍고 구역질이 난다. "우웩~" 거리는데, 눈물이 쏟아진다. 내가 아무리 아프다고 한들, 도희가 아픈 것만 할까? 2년 반 가까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약을 먹어야 했다. 머리는 수시로 무겁고, 때로는 두통으로 몹시 아파했다. 메스꺼워서 병원에서는 진토제를 달고 지냈다. 집에서는 바로 이 변기를 부여잡고 구역질을 했다. 때로는 내가, 어떤 때는 아내가, 도희 등을 살살 두드려주며 울었지만, 도희가 얼마나 아픈지는 몰랐다. 그저 미안하고 안쓰러웠다. 도희는 그래도 그 고통을 잘 견뎌냈다. 나라면, 절대로 도희만큼 잘 참지 못했을 거다.

아파도, 이제는 아프다고 말할 수 없다. 도희를 생각하면, 아무리 아파도, 당장 죽을 것 같아도, 아프다고 할 수 없다. 도희도 아팠는데, 그리고 잃었는데, 도저히 아프다고 할 수가 없다. 아파도 도희가 아픈 것만큼 아프겠는가 싶고, 차라리 도희가 아픈 것만큼 아픈게 낫겠다.

도희는, 얼마나 힘들고 무서웠을까? 아빠라고 하면서도, 내 딸이 겪는 육체의 고통과 마음의 두려움을, 난 제대로 몰랐다. 요 며칠, 호된 편두통을 겪으면서야, 도희가 아픈 게 이 정도였을지, 아니면 더 아팠을지, 울면서 생각한다. 

가끔 죽음을 생각한다. 당장 죽어야겠다는 생각은 못하지만, 죽음을 선고받아도 크게 울거나 공포스러울 거 같지는 않다. 담담할 수 있겠다면 거짓말일 수도 있겠지만, 도희와 엄마를 다시 만날 수 있겠구나, 싶은 생각에, 그럭저럭 죽는 과정을 견딜 수 있을 것 같다. 편두통이 이런 내 생각을 더 굳힌다. 아플수록 도희를, 그리고 엄마를 생각한다.      -dh-

Posted by 도도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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