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0월 26일, 어느 공원>


1. 도희야,  엄마아빠가 감기에 걸려서 좀 아팠어. 그래도 많이 좋아졌어. 아빠는 어젯밤엔 자전거도 탔어. 아빠가 겪는 전형적인 몸살감기는 피했거든. 너도 알잖아, 아빠가 몸살에 걸리면 얼마나 요란하게 앓는지. 엄마는 아직 완전히 좋아지진 않았지만, 그제 결국 병원 가서 약 받아먹고, 며칠 동안 밤마다 일찍 잠자리에 들면서 괜찮아졌어. 엄마가 오늘은, 학교에서 단축 마라톤 달리기가 있어서 거기 갔어. 

   공주야, 오후에 엄마랑 영화 보러 가려고 해. 꼭 보고 싶거나 그런 건 아니고, 엄마 마음을 좀 다독여주려고 해. 너를 잃고, 아니 그 전에도 엄마랑 언제 극장에 갔었는지 기억도 안 나. 하긴, 뭐 그게 대수겠니? 도희가 얼마나 아팠는지를 생각하면, 극장, 영화 따위가 뭐 대수겠니?

   그런데 도희야, 너가 없는데, 엄마랑 영화 보려니까 너무 슬프고, 별로 내키지 않아. 작년이었나? '쿵푸 팬더 2'를 봤잖아. 오전에 1회, 조조로. 극장엔 공주랑 엄마랑 아빠, 그리고 두어 명 정도. 네게 너무 미안하고, 안쓰러웠어. 학교에서 공부하며 친구들과 쫑알대며, 뛰어놀아야 할 시각에, 이렇게 힘든 병과 싸우는 도희를 보자니, 네가 불쌍하고, 엄마가 가엽고, 그랬어. 아빠의 죄가 이렇게 큰 건가 싶은 생각도 했어.

2. 봄은 슬프고, 여름은 잔인하고, 가을은 빈한하고, 겨울은 침묵할 것이다.

   도희야, 아빠 딸, 아빠공주야, 10월 말이야. 어어 하다가 날은 더 쌀쌀해지고, 첫 눈이랍시고 살짝 내렸나 싶다가 겨울이 올 거야. 정말 끔찍하구나.

3. 아빠의 안식 휴가도 두 달 조금 넘게 남았어. 내년 1월부터는 회사에 가야 해. 그 전에, 공주의 흔적을 잘 남겨둘 거야. 그 이후에도 그렇지만, 지금 더 집중해서 작업을 할 거야. 아빠의 마음은, 슬픔 그 자체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더, 네 흔적을 잘 추스리려고 해. 세상 사람들에게, 이렇게 총명하고 예쁜 공주가 있었다는 걸 얘기하고, 도희와 아이들을 기억해 달라고 호소할 거야. 아빠가 할 수 있는 게, 해야 할 게 뭐가 있겠니?

4. 도희야, 승진이 오빠랑, 경륜이 언니랑 다 잘 있지? 엄마들이 많이 힘들어 해. 언니오빠들, 동생들, 친구들과 신나게 놀고 있으렴. 

   아빠는, 단 한 가지 소망으로 하루를, 하루를, 지내고 있어. 도희랑 아빠랑 할머니랑 반드시 다시 만나고, 절대로 두 번 다시 떨어지지 않아. 

   공주야, 정말 미안해, 사랑해, 엄청 사랑해.      -dh-


Posted by 도도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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