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랑 아빠랑/2012년 10월'에 해당되는 글 7건

  1. 2012.10.29 2012년 10월 29일 월, 10월 21일과 몸의 병 by 도도 아빠
  2. 2012.10.26 2012년 10월 26일 금, 이런저런 생각들 by 도도 아빠 2
  3. 2012.10.21 2012년 10월 21일 일, 감기, 편두통, 고통, 병 by 도도 아빠 2
  4. 2012.10.21 2012년 10월 18일 목, 코스모스 by 도도 아빠
  5. 2012.10.21 2012년 10월 17일 수, 잠자리 by 도도 아빠
  6. 2012.10.12 2012년 10월 12일 금, 용문사 은행나무 by 도도 아빠
  7. 2012.10.01 2012년 10월 1일 월, 공순영릉 by 도도 아빠


(2009년 10월 21일, 체험 학습·병원)


도희야, 아빠가 가끔 멍하곤 하는데, 이젠 멍청하기도 해. 아빠가 얼마 전에 일주일 가까이 아팠잖아. 그때는 아픈 것밖에 생각을 못했는데, 날짜를 보다가 많이 슬펐어. 10월 21일, 22일이 아빠가 아픈 가운데, 별 생각없이 지나가 버렸어.

2009년 10월 21일, 공주가 학교 체험 학습을 다녀왔고, 오후에 입원했잖아. 아빠가 하루 휴가를 내서 체험 학습하는 도희 모습을 사진에 담았고, 병원에서 같이 하룻밤을 보냈잖아. 그때만해도 이런 끔찍한 일이 우리에게 일어나리라곤 상상도 못했잖아. 그저 길면 일주일 정도 입원하면 퇴원할 수 있다고 했던 건데, 모든 것이 다 바뀌어 버렸어.

10월 22일 오전에도, 아빠랑 같이 병원 산책하고, 책도 읽고, 심심하다고 찡찡대며, 병원 밥은 맛없다며,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잖아. 그리고 오후. 이** 선생님이 갑자기 나타났고, 모든 고통이 시작됐어. 아빠는 처음에 뭔가 잘못 들은 거로 생각했어. 영화도, 드라마도 아닌데, 이런 황당한 일이 어떻게 있냐고, 어이가 없고, 기가 막혔어. 그렇게 2년 5개월 17일의 잔인한 시간이 우리를 망가뜨리고, 아빠의 영혼보다 더 소중한 너를 빼앗아 갔어.

6월 28일, 공주의 생일은 말할 것도 없고, 9월 23일, 병의 재발을 알았던 날에도, 아빠의 마음은 무너졌어.  어떻게 할 수 없는 슬픔, 분노와 억울함, 고통... 이런 것들이 그 시간들을 채웠어. 

그리고 10월 21일. 이번엔 아빠의 몸이 아팠어. 그 날의 의미를 잠시 잊었나 봐. 그런데 몸이 그 날을 기억하나 봐, 도희야. 너무도 슬픈 날이어서, 몸도 견딜 수 없나 봐.

공주야, 도희야, 아빠는, 죽기 전까지, 너를 다시 만나기 전까지, 아니 그 뒤로도, 너에게 미안하고 또 미안해. 자기 딸도 지켜주지 못한 아빠가, 어떻게 숨 쉬며 살 수 있겠니? 도희야, 정말 미안해.

내일부턴 쌀살해진대. 가을도, 이 황폐한 가을도 가는구나. 삶을 무너뜨리는 가을이 가는구나. 도희야, 아빠공주야, 반드시 다시 만난다. 그리고 절대로 두 번 다시 떨어지지 않을 거야. 공주야, 사랑해, 엄청 사랑해.      -d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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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0월 26일, 어느 공원>


1. 도희야,  엄마아빠가 감기에 걸려서 좀 아팠어. 그래도 많이 좋아졌어. 아빠는 어젯밤엔 자전거도 탔어. 아빠가 겪는 전형적인 몸살감기는 피했거든. 너도 알잖아, 아빠가 몸살에 걸리면 얼마나 요란하게 앓는지. 엄마는 아직 완전히 좋아지진 않았지만, 그제 결국 병원 가서 약 받아먹고, 며칠 동안 밤마다 일찍 잠자리에 들면서 괜찮아졌어. 엄마가 오늘은, 학교에서 단축 마라톤 달리기가 있어서 거기 갔어. 

   공주야, 오후에 엄마랑 영화 보러 가려고 해. 꼭 보고 싶거나 그런 건 아니고, 엄마 마음을 좀 다독여주려고 해. 너를 잃고, 아니 그 전에도 엄마랑 언제 극장에 갔었는지 기억도 안 나. 하긴, 뭐 그게 대수겠니? 도희가 얼마나 아팠는지를 생각하면, 극장, 영화 따위가 뭐 대수겠니?

   그런데 도희야, 너가 없는데, 엄마랑 영화 보려니까 너무 슬프고, 별로 내키지 않아. 작년이었나? '쿵푸 팬더 2'를 봤잖아. 오전에 1회, 조조로. 극장엔 공주랑 엄마랑 아빠, 그리고 두어 명 정도. 네게 너무 미안하고, 안쓰러웠어. 학교에서 공부하며 친구들과 쫑알대며, 뛰어놀아야 할 시각에, 이렇게 힘든 병과 싸우는 도희를 보자니, 네가 불쌍하고, 엄마가 가엽고, 그랬어. 아빠의 죄가 이렇게 큰 건가 싶은 생각도 했어.

2. 봄은 슬프고, 여름은 잔인하고, 가을은 빈한하고, 겨울은 침묵할 것이다.

   도희야, 아빠 딸, 아빠공주야, 10월 말이야. 어어 하다가 날은 더 쌀쌀해지고, 첫 눈이랍시고 살짝 내렸나 싶다가 겨울이 올 거야. 정말 끔찍하구나.

3. 아빠의 안식 휴가도 두 달 조금 넘게 남았어. 내년 1월부터는 회사에 가야 해. 그 전에, 공주의 흔적을 잘 남겨둘 거야. 그 이후에도 그렇지만, 지금 더 집중해서 작업을 할 거야. 아빠의 마음은, 슬픔 그 자체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더, 네 흔적을 잘 추스리려고 해. 세상 사람들에게, 이렇게 총명하고 예쁜 공주가 있었다는 걸 얘기하고, 도희와 아이들을 기억해 달라고 호소할 거야. 아빠가 할 수 있는 게, 해야 할 게 뭐가 있겠니?

4. 도희야, 승진이 오빠랑, 경륜이 언니랑 다 잘 있지? 엄마들이 많이 힘들어 해. 언니오빠들, 동생들, 친구들과 신나게 놀고 있으렴. 

   아빠는, 단 한 가지 소망으로 하루를, 하루를, 지내고 있어. 도희랑 아빠랑 할머니랑 반드시 다시 만나고, 절대로 두 번 다시 떨어지지 않아. 

   공주야, 정말 미안해, 사랑해, 엄청 사랑해.      -dh-


Posted by 도도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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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에서 2박 3일을 보내고 돌아오는 목요일 저녁, 아니 정확하게는 이틀째 되는 날 저녁부터 감기 기운이 있었다. 그럭저럭 견딜만 했기에 자전거를 탔다. 샘게우물 조금 못 미친 마을에서 출발해 충주쪽으로 가다 쌍다리까지, 대략 왕복 40km를 탔다. 햇살은 여전히 좋고, 중간에 적당히 쉬면서 탔다. 숙소로 돌아오니 몸이 좀 나른했지만 괜찮다 싶었는데, 땀난 상태에서 샤워를 한 게 안 좋았다. 감기에 걸렸다.

몸살로 가는 건 어떻게든 막으려고 애를 썼다. 감기몸살을 워낙 '세게' 앓기에. 십중팔구, 열감기로 번져서 온 몸이 오한에 벌벌 떨면서 적어도 사나흘은 끙끙 앓는다. 아내에게도 미안하고, 그렇게 아프긴 싫었다. 특히 지난 금요일 저녁에 장애아들로 이뤄진 합창단을 돕는 1일 호프가 있어서 거기에 갔어야 했다. 엄홍길 대장을 만나야 했다. 네팔에 도희 이름의 학교를 짓는 걸 논의해야 한다. 그런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안방에 아주 작은 화장실이 붙어있다. 도희만 쓰게 했던 화장실이다. 이번엔 나만 쓴다. 아내와 도영이에게 감기를 옮길까 싶어서. 변기를 붙잡고, 계속 "우웩~" 거리고 있다. 

몸살로 번지는 건 막았다. 도희가 먹었던 면역력 강화제를 네 개나 먹었고, 일찍 잠자리에 들고, 고용량 비타민C도 먹고, 그렇게 했더니 그나마 효과가 있다. 그런데 머리가 너무 아프다. 목요일 밤부터 두통의 징후가 있더니 금요일 오전부터 제대로 시작이다. 특히 편두통이다. 평소 편두통은 거의 없었는데, 많이 아프다. 머릿속에서 송곳으로 쿡쿡 찔러대는 느낌. 머리 왼쪽 뒷편에서 통증이 시작하더니, 위 아래로 옮겨다니며 아프다. 누울 때 아픈 곳을 댈 수 없을 정도로 아프다. 그래서 하룻밤은 오른쪽으로만 누워서 잤다.

두통 때문인지, 메스껍고 구역질이 난다. "우웩~" 거리는데, 눈물이 쏟아진다. 내가 아무리 아프다고 한들, 도희가 아픈 것만 할까? 2년 반 가까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약을 먹어야 했다. 머리는 수시로 무겁고, 때로는 두통으로 몹시 아파했다. 메스꺼워서 병원에서는 진토제를 달고 지냈다. 집에서는 바로 이 변기를 부여잡고 구역질을 했다. 때로는 내가, 어떤 때는 아내가, 도희 등을 살살 두드려주며 울었지만, 도희가 얼마나 아픈지는 몰랐다. 그저 미안하고 안쓰러웠다. 도희는 그래도 그 고통을 잘 견뎌냈다. 나라면, 절대로 도희만큼 잘 참지 못했을 거다.

아파도, 이제는 아프다고 말할 수 없다. 도희를 생각하면, 아무리 아파도, 당장 죽을 것 같아도, 아프다고 할 수 없다. 도희도 아팠는데, 그리고 잃었는데, 도저히 아프다고 할 수가 없다. 아파도 도희가 아픈 것만큼 아프겠는가 싶고, 차라리 도희가 아픈 것만큼 아픈게 낫겠다.

도희는, 얼마나 힘들고 무서웠을까? 아빠라고 하면서도, 내 딸이 겪는 육체의 고통과 마음의 두려움을, 난 제대로 몰랐다. 요 며칠, 호된 편두통을 겪으면서야, 도희가 아픈 게 이 정도였을지, 아니면 더 아팠을지, 울면서 생각한다. 

가끔 죽음을 생각한다. 당장 죽어야겠다는 생각은 못하지만, 죽음을 선고받아도 크게 울거나 공포스러울 거 같지는 않다. 담담할 수 있겠다면 거짓말일 수도 있겠지만, 도희와 엄마를 다시 만날 수 있겠구나, 싶은 생각에, 그럭저럭 죽는 과정을 견딜 수 있을 것 같다. 편두통이 이런 내 생각을 더 굳힌다. 아플수록 도희를, 그리고 엄마를 생각한다.      -dh-

Posted by 도도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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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18일 목, 샘게우물>


(이 글은 10월 18일 목요일에 페이스북에 올린 것을 다시 정리한 글입니다. 여주에 다녀온 뒤 사흘간 감기로 꼼짝못하다 오늘에야 올립니다.)

오늘(10월 18일 목)은 여주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어제 새벽부터 비가 와서 오전에 그쳤다. 오후에 자전거를 타기엔 시간이 빠듯할 것 같아 하루 미뤘다. 날씨는 여전히 쾌청하다. 내 삶의 시간과는 반대되는 날씨다. 마음이 그냥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도희가 이런 밝고 맑은 날을 좋아했으니.

샘게우물가에서 잠시 쉬었다. 코스모스들이 눈에 띈다. 일부러 가꾼 것들은 아닌 것 같다. 아내가 코스모스를 좋아한다. 그래서 사진 몇 장을 찍어서 보내줬다. 사진을 찍다보니, 코스모스가 참 예쁘다. 도희만큼은 아니어도, 도희처럼 예쁘다. 눈길을 끄는 코스모스들이 있다. 색이 참 곱다, 했더니, 분홍색이다. 아, 그렇구나, 도희가 분홍색을 제일 좋아하지, 그래서 '분홍공주'라고 불렀지. 그렇구나, 그래서 아빠 눈이 이렇게 끌리는 구나.

처음부터 쌩쌩, 멀리 멀리 가려고 하지 않았다. 카메라를 들고 나오지 않았지만, 담고 싶은 것들이 눈에 밟힌다.

논에, 밭에, 산에, 강가에, 생명을 잃은 것들, 잃어가는 것들이 많다.

어떤 풀들은 되살아나고, 나무들은 잎을 피우겠지만, 어떤 것들은 이 가을에 바짝 말라가며 생명을 마무리한다. 저 코스모스들도, 꽃을 피우는 것들 못지않게, 아마 더 많은 것들은 스러져가고 있을 것이다.

생명이란 무엇일까?

삶도, 죽음도, 모두 자연의 일부라던 노무현 대통령을 가끔 생각한다. 부엉이 바위에서 무엇을 바라보며 떠올렸을까?

도희와 늘 함께 있음을, 반드시 다시 만남을 신앙으로 고백하며 오늘도 버틴다.      -dh-

Posted by 도도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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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16일 수, 여주>


(이 글은, 10월 17일 페이스북에 올린 것을 다시 정리한 글입니다. 여주에 다녀온 뒤 감기에 걸려 사흘 간 꼼짝 못하고 누워있다가 올립니다.)

어제, 10월 16일, 여주에 왔다. 친구와 함께. 애들 엄마와 도영이에겐 많이 미안하다. 안식휴가라며 쉬고 있는데도 2박 3일 다녀오겠다고 하니, 잘 쉬고 오라며 보내줬다. 나보다 더 힘들텐데, 아내에겐 미안하고 고맙기만 하다.

오긴 했지만, 딱히 뭔가를 하려고 온 것은 아니다. 2박 3일 가운데 이틀은 음악 들으며 책만 읽을 계획이다. 하루는 자전거를 타려고 한다. 여주의 남한강변에서 출발해 충주 쪽으로, 페달을 돌릴 수 있는만큼 돌려보려고 한다.

참 좋은, 밝고 맑은 가을 날씨다. 하늘이 무척 푸르다. 도희가 제일 좋아하는 그런 날씨다. 

지난주 토요일, 한겨레와 경향인가 한국일보 북섹션에서 『와일드』에 대한 기사를 읽고, 여주에 갈 때 이 책을 읽으면 되겠다 싶었다.

어제 점심 먹고 숙소에 들어와서부터 『와일드』를 읽고 있다. 이 책에 적잖게 감정이입이 된다. 나이도 같고, 둘 다 엄마를 잃었고. 나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려다 접었지만, 셰릴은 미국 서부를 종으로 가로지르며 4,285km, PCT를 다녀왔다. 산티아고길에 나서지 못한게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도희의 흔적을 남기기 위한 여러 작업들을 해야 했기에. 원래 계획대로라면 이달 24일 귀국했겠지만, 도서관이나 '쫑알공주 도희체' 작업이 어떻게 됐을지 모르겠다. 사진 예세이는 지금으로선 어렵게 됐지만, 산티아고길을 떠나서도 길을 걷는 것에 집중하지 못했을 것 같다. 다음에 걸을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셰릴은, 그 4,285km 길을 다 걷고 위로를 얻었을까? 

'내가 해냈다는 사실 외에 알고 있어야 할 것들은 없었다. 내가 정말로 해냈다는 사실만 기억하면 충분했다. 그게 어떤 의미인지 정확하게 말할 수 ㅇ벗으면서도 그 의미를 이해하는 것... 이제는 더 이상 텅 빈 손을 휘저을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믿게 되었고 저 수면 아래를 헤엄치는 물고기를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되었다... 인생이란 얼마나 예측 불허의 것인가. 그러니 흘러가는 대로, 그대로 내버려둘 수밖에.'(책 548~549쪽)

육체를 한계 속에 몰아넣을 때, 슬픔은 어떻게 작용할까? 산티아고길을 생각했던 것이 아마도 마음의 슬픔을 몸의 한게 속에 녹이려했던 게 아닐까? 어쩌면 그게 도움이 됐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어제와 오늘, 아무것도 하지 않고 『와일드』만 읽었다. 오늘 오전엔 비가 살짝 남아서 뿌리더니, 오후엔 갰다. 여주의 공기는 맑고 깨끗하다. 어젯밤, 모처럼 제법 마셨는데 취하지도 않고, 두통도 없다.

오후 4시 무렵까지는 햇살이 참 따스하다. 책에 집중하기 좋다.

책도 좋지만 내 마음을 더 건드린 건, 잠자리다. 책을 읽고 있는데, 책에 살짝 내려와 앉는다. 책장을 넘기기가 미안해서 잠시 책읽기를 멈추고 살펴본다. 어떨 땐 한 마리, 어떨 땐 두 마리가 온다. 작고 귀엽다. 

'왔니?"하고 녀석들에게 말을 건네는데, 울음이 쏟아진다.

도희는, 어렸을 때 내가 책을 읽고 있으면 나에게 파고들곤 했다. 심심해, 하면서, 놀자고. 응, 잠깐만, 하면 또 와서 팔을 잡아끈다. 그럼 거의 어김없이 놀아주곤 했다. 집 안에서 놀기도 했고, 마당에서, 아니면 놀이터에 함께 나가서 놀곤 했다.

"도희 왔니?", 아빠의 보물 1호, 도희야, 왔니? 이 청명한 가을에, 네가 제일 좋아하는 화창한 가을에, 너를 잃고 어쩔 줄 몰라하는 아빠한테 왔니?      -dh-


Posted by 도도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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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11일, 용문사 은행나무>


어제, 도희가 걸터앉고 사진을 찍은 곳,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에 다녀왔다. 2007년엔 추석이 9월 말에 있었다. 도희랑 도영이, 도영이와 동갑인 사촌 아이를 데리고, 엄마와 아버지를 모시고 갔고, 그 때 사진을 찍었다. 그날 은행나무는 초록이었는데, 어제도 초록이었다.

천년이 넘었다는 이 은행나무는, 세상 이치를, 또 삶과 죽음의 이치를 아시겠지 싶다. 다만 그걸 우리에게 전하지 못하는 것이겠지. 그 이치를 인간이 알면,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까. 그런데 이 은행나무는 참 오래도 사신다. 1,000~1,500년 정도 됐다고 하니. 그 긴긴 수명, 도희랑 승진이랑 아이들에게 나눠주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부질없는 생각이라는 거 안다. 내 새끼에게 나도 내 목숨을 주지 못 했는데...

나도 잘 모르겠다. 왜 이렇게, 도희를 데리고 왔던 곳들을 찾는지. 그냥 마음이, 발걸음이 그리 된다.

도희를 울타리 위에 앉혔던 자리다. 공주의 흔적은 없고, 차갑다.

삶은 잔인하다. 생명이라는 것 자체가 맹목이고 잔혹하다. 사람은 그저 거기에 자기 삶의 의미를 더할 뿐이다.

내려오는 길에 도희랑 할아버지가 앉았던 작은 바위를 찾았다. 은행나무의 거대한 모습이 다 잡히는 거리에서 찍었는데. 그 곳은 없어지고 정원으로 꾸몄다. 바위도 사라졌다.

화장실과 가게가 있는 곳에 잠시 멈춘다. 기억이 조금씩 난다. 그날, 화장실에서 나온 공주는, 가게 앞을 알짱거리다가 나와 엄마를 보며 웃었다. 장난감 하나 사달라고. 보통 엄마아빠들처럼, 안된다고 했다. 울먹이는 공주. 할머니가 다독이며 사주셨다. 아마 바람개비였던 것 같다. 그러고보니 은행나무 앞에서 사진을 찍을 때도, 할머니는 혹시라도 도희가 울타리에서 떨어질까 도희만 꼭 잡고 계셨다. 애들 엄마 말대로, 그래도 할머니가 도희를 잘 돌봐주시겠지, 생각한다.

은행나무는, 얼마나 더 살고 싶어하려나? 나는 도희와 엄마에게 가고 싶다.      -dh-

Posted by 도도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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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9월 13일, 경기도 파주삼릉(공순영릉)>


도희야, 엄마랑 공순영릉에 왔어 2009년 9월, 청명한 날, 공주가 입원하기 한달 여전에 우리 가족 왔잖아 도희랑 오빠랑 물에 발 담그고 놀던 그 작은 시냇물 앞에 앉아 있어 돗자리를 폈던 곳도 찾았어 놀다가 젖은 옷이랑 신발을 말리려고 널어놓았던 곳도 찾았어 나무들도, 돌도, 풀들도, 그대로 있구

왜 여기를 찾았는지는 모르겠어 도희야 아침에 깨어 기도하고 있는데, 문득 와보고 싶었어 지난번 청계산에 다녀온 것처럼 말이야

와본들, 마음만 아프고 슬프지만, 도희랑 왔던 곳들을 다시 찾게 되네 처량해 보이겠지만 상관없어 기억하고 가슴에 담고, 잘 슬퍼하려는 거야

도희야, 그런데 너무 슬퍼 공주가 없는데, 여기는 아무렇지도 않다는듯, 호젓하게 그대로야 아이들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무너져 아빠 딸은 없는데 당신은 좋겠다, 애들이, 엄마, 아빠 부르니 정말 좋겠다

도희야, 사랑해, 엄청 사랑해 반드시 다시 만난다 아빠가 너무 너무 미안해-dh-


Posted by 도도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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